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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의 하이파이브


남들 다 실력대로 본다는 수능시험, 제 실력 하나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는 핑계로 자발적 잉여인간의 주홍글씨 J (jasoosang)를 가슴에 보듬어 안고 이층침대 네 개짜리 고시원에 모인 전국구 양아치들은 해떨어지면 둘러앉아 온갖 판을 벌였다. 그곳에서는 패(牌)를 돌리니 피(被)가 나리고, 여(女)를 논함에 봉(棒)이 솟으며, 주(酒)를 접함에 개(犬)로 거듭남이로다. 가로되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창 19:25)
실시간 리그로 진행되는 포커판에 앉아 애저녁에 비워버린 뚜껑 빨간 25도 두꺼비를 꽁초로 리필하고 있노라면, 누군가의 시선을 계속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그 시선은 본분에 충실하지 않은 채 허송세월하는  내 스스로를 응시하는 내면의 양심이었다.'라는 식으로 후에 친구놈들에게 구라를 치기는 했지만, 사실 그 시선은 문짝에 붙여놓은 큼지막한 포스터 속에서 당대 우리의 영원한 아이돌로 존재했던 TTL 소녀의 깊이를 알 수 없던 눈망울이었다. 일찌감치 버려야 했을 패에서 눈을 들어 그녀와 시선을 주고받을 때면 방바닥은 조금씩 금이 가다 아래로 무너져내렸다. 새하얗던 그녀의 얼굴이 담뱃진으로 누렇게 뜨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가을이 왔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잉여들은 한국시리즈에 귀를 기울였다. dmb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시기였기에 우리는 라디오 주파수를 맞춰놓고 독서실에서 숨을 죽였다. 부산출신 촌놈들과 대전출신 양반들은 복도에서, 화장실에서 스치면서 슬쩍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데이비스와 로마이어, 장종훈으로 이어지는 타선과 정민철-송진우-구대성의 투수진은 당대 최고의 수준이었다. 경기 막판, 교체되어 마운드에 올라오는 구대성의 이름 석 자만 들려도 안도가 밀려오는 찰나의 기분을 어찌 제대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모두가 조용히 공부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이)는 독서실에서, 롯데와의 5차전 9회초 역전 후 9회말에 구대성이 쐐기를 박아버렸을 때, 나는 차마 환호성을 지르지 못하고 그냥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반대편에 조금 떨어져있는 책상에서 동시에 소리없이 벌떡 일어난 대전출신 아가씨 한 명과 눈을 마주쳤다. 우리는 그저 조용히, 양 손을 들어 가상의 하이파이브를 했다. 난 가끔, 이제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소녀의 잊을 수 없을 만큼 천진난만한 웃음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 웃음에 거의 85% 근접한 미소를 가진, LG트윈스 팬이었던 옛 여자친구를 자연스럽게 연상한다. 빌어먹을 기억의 연쇄. 


10 년이 흘렀고, 정민철은 이제 영구 결번 23번을 남기고 은퇴했다. 즐거운 추억들을 안겨주었음에 감사하며-당신은 멋진 선수였습니다-한화여, 내년에는 제발 좀 날아보자.

# by 민물 | 2009/09/19 00:40 | 굴곡 없는 일상 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부끄러움

여름의 초입이었다. 대한문 앞에서 두 시간 줄 서 기다린 다음, 그에게 큰절 두 번 올리고 젯상 앞에 새로 산 담배 한 갑을 포장 뜯어 놓고 돌아섰을 때에도 눈물은, 애써 참을 수 있었다. 그 며칠 후 서울광장 땡볕 아래 노란 모자 쓰고 앉아 상록수를 들으며 그를 영영 보낼 때에도, 다만 침착하게 분노하며 이를 갈고 앉아 있을 따름이었다. 그는, 내 손으로 처음 선택했던 나의 대통령이었다. 

그 여름의 끝자락, 자신이 평생을 추구했던 가치와 신념을 이어받은 동지를 먼저 보내버린 후, 온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아이처럼 엉엉 울어버린 노(老)대통령이 좋은 세상 한 번 보지 못하고 기어이 눈을 감았을 때에도 조용히, 깊은 한숨 한 번으로 보내드렸다. 얄팍한 분노는 삶의 고단함에 덮여 빠르게 스러져갔다. 신념을 말하는 사람을 믿지 않는 대신, 신념을 추구하는 사람을 믿는다고 주절거리던 나 역시, 입으로만 신념을 말하던 그저 그런 서 푼짜리 인종이었다. 천박한 적자생존의 논리로 무장하고 이빨을 드러낸 정권 아래, 완장 차고 꼬리 흔들며 충실하게 킁킁 냄새를 맡고 다니던 장관이 가장 순수한 예술의 영역에까지 정치의 논리를 들이대며 뒷다리 들고 똥물 찌끄리는 판국에도, 기껏 되먹지 못난 글줄 하나 남긴 후 이불 덮어쓰고 궁시렁댈 따름이었다.

3일 째, 학교 안에서 텐트 치고 책 읽으며 조용히 자신의 신념을 추구하는 사람(http://blog.naver.com/hobangee)이 있다.
그의 블로그를 보며, 그의 작품들을 보며 죽어버린 전직 대통령들이 그렇게도 지키려 했던 가치와 담론이, 사실은 우리네 일상과 한없이 가깝게 맞닿아있던 소박한 가치와 조용히 조응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버리는 순간, 나는 신념을 추구했던 사람과, 신념을 추구한다고 말하는 사람과, 말하지 않고 신념을 추구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눈을 비볐다.  
그것은 삶의 고단함과 타협하지 않은, 한없이 실천적인 사람에 대해 느끼는 깊은 부끄러움과 맞닿아 있다.


# by 민물 | 2009/09/06 00:29 | 겉만 핥는 사상 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갇


"막 몸살기운이 뼈마디로 슬금슬금 기어들어오는데...왜 그런 증상 있잖냐, 광대뼈는 훅훅 달아오르고 눈꺼풀은 무겁고. 이거 신종플루 아냐? 하고 갤갤거리며 수업을 듣고 있는데 문자가 왔어. 학교 앞에서 술을 들이붓고 있다네? 나도 사람인데, 오늘은 조신하게 귀가해서 곱게 잠들어야지...막상 수업 끝나니까 무의식중에 김유신이 태웠다가 참수당한 망아지마냥 술자리로 향하고 있더만. 쳇, 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90년대에 태어난 후배 여자애들이 오빠오빠 하고 부르면서 언제까지 어깨춤을 추게 할거냐며 살랑살랑 술잔을 채우는데...요것들이 얼굴로는 눈웃음을 살살 흘리면서 손으로는 한 방울도 넘치지 않고 정확하게 폭탄주를 말아대고 있더라 이거지. 왜 타짜에서 고니가 한마디 하잖아? 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근데 말이다. 첫잔 딱 들이키니까 넌 두통이 없어지고(허경영!). 두잔 들이키니까 넌 미열이 스러지고(허경영!). 석잔 들이키니까 넌 뼈마디에 기름칠이 되더라니까?(허경영!). 새벽까지 들이붓고는 친구놈 자취방에서 오후까지 엎어져 있다가 쓰레빠 끌고 나와 설렁탕 한그릇 먹고 땀을 쫙 빼니까 타미플루가 따로 없더라구. 아 존나."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친구놈은 최대한의 경의를 담아 말했다.





# by 민물 | 2009/09/04 11:42 | 굴곡 없는 일상 이야기 | 트랙백 | 덧글(1)
친구와의 대화에 대하여
가끔 만나지만, 만나면 항상 코가 비뚤어질때까지 마시는 친구 한 놈이 있다.

놈은 항상, 나를 만나면 '너도 나처럼 그냥저냥 건실한 회사에 취직하고 저축해서 장가나 가라 인마.' -라며 내가 평소에 쉽게 들어가기 힘든 가격대의 밥집으로 호기롭게 나를 이끈 다음, 반주 몇 잔 들이키고는 '그래도 가끔 네가 부럽다. 하고싶은 것 하면서 사는 게 어디냐.' -며 어깨를 수그리다가, 2차로 장소를 옮기면서 '씨바 이게 사는게 아냐. 다 때려치우고 팀장은 패 죽여버리겠다. 너네학교 시험 어렵냐?' -고 주절대고는 결국 막차 끊기기 직전, 막잔을 들이부으며 '그래도 세금내고 사는게 어디냐, 너도 얼른 청약저축 하나 들어놓거라.'-는 식의 뻔한 레퍼토리를 풀어놓고는 비틀거리며 사라진다.

학생 신분이 길어진다는 것은, 라디오 교통정보 프로그램의 실시간 교통상황을 필요로 하는 일상과 조금 더 멀어짐을 뜻한다. 퇴근길이라 차가 밀려 약간 늦을것 같다는 놈의 전화를 받은 후, 나는 편의점 앞 테이블에 앉아 바나나우유를 만지작거리며 여전히 내 것이 되지 못한 거대한 주상복합 아파트 건물의 층수를 나른하게 짚어가다가 한 번 운전대를 잡아보지 못한 외제차의 대수를 느슨하게 헤아리고는, 집으로 향하는 직장인들과의 바쁜 동선과는 딱 반 보의 차이로 길가에 물러앉아 느긋하게 달콤한 바나나우유를 홀짝거렸다. 바나나우유를 마셨음에도 여전히 입맛은 쓰다.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놈은 딱 그 기간만큼 나이가 들어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마주서서 잠시 거울을 보고 피차 깊어진 주름과 조금씩 정상을 향하는 이마의 등고선을 확인하고는 그간 만나지 못한 무심함에 가벼운 욕을 교환하고, 피식 웃은 다음 밥집으로 향했다. 거울 이쪽저쪽의 차이는 평일 저녁, 정장을 입고 있냐, 쓰레빠를 끌고 있냐의 차이일 뿐이다. 빌어먹을 바나나우유를 하나 더 마시고 싶었다.

놈은 예술 이야기를 하고, 나는 세상 이야기를 한다. 놈이 마르께스의 똥구멍을 핥을 때 나는 삼성의 똥구멍을 후빈다. 우리 대화의 파토스와 에토스가 유일하게 겹쳐지는 지점은 놈이 일전에 독재정권에다 용비어천가를 써제낀 老시인을, 내가 여전히 독재정권과 흘레 붙은 거대 신문사를 욕할 때 뿐이다. (그리고, 물론 그 모든 이야기는 군대와 여자 이야기로 수렴된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대화는 항상 각자의 문제를 상대방이 끌어내주면서 시작하고, 각자의 현실을 상대방이 동의해주면서 심화되며 각자의 미래를 상대방이 인정해주면서 마무리된다. (그리고, 물론 그 모든 이야기는 군대와 여자 이야기로 수렴된다.)
학교 앞 막걸리집과는 다른 의미에서, 나는 대한민국 평균치에 대한 강박감을 잊는다. 직장 앞 호프집과는 다른 의미에서, 놈은 밀쳐놓은 희망에 대한 아쉬움을 잊는다. 그리고 우리는 때려 죽이고 싶은 팀장이 기다리고 있는 직장으로, 맞아 죽임을 당할 논문이 기다리고 있는 학교로 각각 발걸음을 옮긴다.

어쩌면 우리는, 특이한 방식으로 서로를 위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by 민물 | 2009/08/23 23:06 | 굴곡 없는 일상 이야기 | 트랙백 | 덧글(2)
왜 한국예술종합학교였는가
한국예술종합학교, 학교가 들썩인다. 학생들이 움직인다.



우리 예술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다. 자신만의 문장을 찾고자 했다. 단어를 놓고 각운을
맞추면서 즐기고 싶었다. 서 푼어치 지식과 석 장짜리 단어만으로도 주석 달고 사전 찾을 일 없이 술술 넘어가는 글을 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생각했다. 글의 목을 비틀고 살을 낱낱이 헤치며 가시를 발라내어 늘어놓았지만 저녁 찬거리에도 미치지 못했다.
나의 문장은 비루했고 나의 상상은 비천했다. 부끄러움은 멀리서 가끔 찾아왔음에도 지척에 깊이 스며들었다.

그리고 나는 이곳에서 공부하는 자들의 언어를 접했다.

문장은 날 것 그대로였고 일체의 수식이나 비유를 들지 않은 언어들은 담백했다. 무거운 말들은 가볍게 흘러나와 실팍하게 쌓여갔고 가벼운 말들은 진중하게 엮이면서 묵직하게 굴러갔다. 누구 하나 제대로 찾지 못하던 낡은 도서관의 깊은 우물에서 까치발로 동이 던져 길은 물로 밥 짓고 뜸 들여 뜨끈하게 차려준 밥상 받으니 그곳이 아랫목이었고 책상이었다. 나의, 당신들의 근원을 찾는 질문에서는 언제나 그렇게 갓 지은 밥내가 났다. 그대들이 차려주는 오래된 밥상에 빨갛고 파랗고 노란 봄꽃이 피었다.

여느 오선에도 자리두지 않고 흐르는 농현은 모든,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눈마주침이었고 하늘로 힘껏 날아오르다가 중력에 순응하여 수그러드는 한삼은 지상에서 지고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고매한 움직임이었다. 지고로 향하는 그대들의 날줄을 우리들은 당대로 관통하며 씨줄로 엮어주리라 생각했다. 함께 짜낸 성긴 무명 이 풍진 세상에 실팍한 바람막이 하나쯤 되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색색들이 고운 비단 돌덩이에 갇힌 무채색 일광을 어찌 아니 화려하게 수놓아주겠는가. 하루 종일 베틀에 앉아 잡히지 않는 것에 대하여 외롭게 공부하는 자들의 구부정한 허리를 이리 모르겠는가. 그 이유가 그들의 어깨에 두껍게 쌓인 지식의 더깨 때문임을 하물며 모르겠는가.

우리는 여전히 받으면서 살고 있다.

눈물 내고 피를 뽑아 나를 먹인 사람이 있다. 상식 엮고 지식 내어 나를 이끈 사람이 있다.
웃음 주고 온기 덮어 나를 살린 사람이 있다. 몸짓 얹고 소리 섞어 나를 홀린 사람이 있다.
그들은 내가, 누구의 이야기를 하는지 안다. 그렇게 우리는, 빚을 지며 산다.

다시, 빚을 갚을 시간이 왔다.

# by 민물 | 2009/05/22 12:54 | 별것 아닌 예술 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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