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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
[月狂] 골방 Cafe: Que sera sera 산하의 썸데이서울 Punctum! Punctum! 양우리 OFF Keep Swinging, Baby 내 안의 여행유전자 스폰지, 자신을 미워하.. 생각보다 짧은 시간 이글루 파인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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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잘 살고 있나요?
모두가 조용히 공부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이)는 독서실에서, 롯데와의 5차전 9회초 역전 후 9회말에 구대성이 쐐기를 박아버렸을 때, 나는 차마 환호성을 지르지 못하고 그냥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반대편에 조금 떨어져있는 책상에서 동시에 소리없이 벌떡 일어난 대전출신 아가씨 한 명과 눈을 마주쳤다. 우리는 그저 조용히, 양 손을 들어 가상의 하이파이브를 했다. 난 가끔, 이제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소녀의 잊을 수 없을 만큼 천진난만한 웃음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 웃음에 거의 85% 근접한 미소를 가진, LG트윈스 팬이었던 옛 여자친구를 자연스럽게 연상한다. 빌어먹을 기억의 연쇄. ![]() 10 년이 흘렀고, 정민철은 이제 영구 결번 23번을 남기고 은퇴했다. 즐거운 추억들을 안겨주었음에 감사하며-당신은 멋진 선수였습니다-한화여, 내년에는 제발 좀 날아보자. 여름의 초입이었다. 대한문 앞에서 두 시간 줄 서 기다린 다음, 그에게 큰절 두 번 올리고 젯상 앞에 새로 산 담배 한 갑을 포장 뜯어 놓고 돌아섰을 때에도 눈물은, 애써 참을 수 있었다. 그 며칠 후 서울광장 땡볕 아래 노란 모자 쓰고 앉아 상록수를 들으며 그를 영영 보낼 때에도, 다만 침착하게 분노하며 이를 갈고 앉아 있을 따름이었다. 그는, 내 손으로 처음 선택했던 나의 대통령이었다. ![]() 3일 째, 학교 안에서 텐트 치고 책 읽으며 조용히 자신의 신념을 추구하는 사람(http://blog.naver.com/hobangee)이 있다. 그의 블로그를 보며, 그의 작품들을 보며 죽어버린 전직 대통령들이 그렇게도 지키려 했던 가치와 담론이, 사실은 우리네 일상과 한없이 가깝게 맞닿아있던 소박한 가치와 조용히 조응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버리는 순간, 나는 신념을 추구했던 사람과, 신념을 추구한다고 말하는 사람과, 말하지 않고 신념을 추구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눈을 비볐다. 그것은 삶의 고단함과 타협하지 않은, 한없이 실천적인 사람에 대해 느끼는 깊은 부끄러움과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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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만나지만, 만나면 항상 코가 비뚤어질때까지 마시는 친구 한 놈이 있다.
놈은 항상, 나를 만나면 '너도 나처럼 그냥저냥 건실한 회사에 취직하고 저축해서 장가나 가라 인마.' -라며 내가 평소에 쉽게 들어가기 힘든 가격대의 밥집으로 호기롭게 나를 이끈 다음, 반주 몇 잔 들이키고는 '그래도 가끔 네가 부럽다. 하고싶은 것 하면서 사는 게 어디냐.' -며 어깨를 수그리다가, 2차로 장소를 옮기면서 '씨바 이게 사는게 아냐. 다 때려치우고 팀장은 패 죽여버리겠다. 너네학교 시험 어렵냐?' -고 주절대고는 결국 막차 끊기기 직전, 막잔을 들이부으며 '그래도 세금내고 사는게 어디냐, 너도 얼른 청약저축 하나 들어놓거라.'-는 식의 뻔한 레퍼토리를 풀어놓고는 비틀거리며 사라진다. 학생 신분이 길어진다는 것은, 라디오 교통정보 프로그램의 실시간 교통상황을 필요로 하는 일상과 조금 더 멀어짐을 뜻한다. 퇴근길이라 차가 밀려 약간 늦을것 같다는 놈의 전화를 받은 후, 나는 편의점 앞 테이블에 앉아 바나나우유를 만지작거리며 여전히 내 것이 되지 못한 거대한 주상복합 아파트 건물의 층수를 나른하게 짚어가다가 한 번 운전대를 잡아보지 못한 외제차의 대수를 느슨하게 헤아리고는, 집으로 향하는 직장인들과의 바쁜 동선과는 딱 반 보의 차이로 길가에 물러앉아 느긋하게 달콤한 바나나우유를 홀짝거렸다. 바나나우유를 마셨음에도 여전히 입맛은 쓰다.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놈은 딱 그 기간만큼 나이가 들어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마주서서 잠시 거울을 보고 피차 깊어진 주름과 조금씩 정상을 향하는 이마의 등고선을 확인하고는 그간 만나지 못한 무심함에 가벼운 욕을 교환하고, 피식 웃은 다음 밥집으로 향했다. 거울 이쪽저쪽의 차이는 평일 저녁, 정장을 입고 있냐, 쓰레빠를 끌고 있냐의 차이일 뿐이다. 빌어먹을 바나나우유를 하나 더 마시고 싶었다. 놈은 예술 이야기를 하고, 나는 세상 이야기를 한다. 놈이 마르께스의 똥구멍을 핥을 때 나는 삼성의 똥구멍을 후빈다. 우리 대화의 파토스와 에토스가 유일하게 겹쳐지는 지점은 놈이 일전에 독재정권에다 용비어천가를 써제낀 老시인을, 내가 여전히 독재정권과 흘레 붙은 거대 신문사를 욕할 때 뿐이다. (그리고, 물론 그 모든 이야기는 군대와 여자 이야기로 수렴된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대화는 항상 각자의 문제를 상대방이 끌어내주면서 시작하고, 각자의 현실을 상대방이 동의해주면서 심화되며 각자의 미래를 상대방이 인정해주면서 마무리된다. (그리고, 물론 그 모든 이야기는 군대와 여자 이야기로 수렴된다.) 학교 앞 막걸리집과는 다른 의미에서, 나는 대한민국 평균치에 대한 강박감을 잊는다. 직장 앞 호프집과는 다른 의미에서, 놈은 밀쳐놓은 희망에 대한 아쉬움을 잊는다. 그리고 우리는 때려 죽이고 싶은 팀장이 기다리고 있는 직장으로, 맞아 죽임을 당할 논문이 기다리고 있는 학교로 각각 발걸음을 옮긴다. 어쩌면 우리는, 특이한 방식으로 서로를 위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